4. 출국 날

* 지난 2020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 새벽까지 코로나 시대에 혼자 가 본 아프리카 출장기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기억에 근거해 기록해 둔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간의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시간을 견뎌 보자는 의도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 기록해 본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차례, 아프리카 현지에서 2번, 귀국해서 1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으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출장기를 포스트 하고 있는 지금, 비어있는 부산의 어머니 집에서 자가 격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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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때문에 머물고 있는 부산에서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선릉역에서 회사 대표를 만나 이것저것 상의를 하고, 대표의 집 근처인 일산에서 저녁을 함께 한 후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퇴근 시간의 악명 높은 강변북로의 차들에 막혀 시간을 다 보내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공항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적립해 둔 포인트로 할인받아 탑승했던 수서행 SRT 특실에서 제공하는 미스트 팩. 나이로비의 날씨를 미처 확인하지 못해 우선 챙겼다]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대표의 걱정과 미안함이 뒤섞인 잠깐의 환송을 뒤로하고 바라본 인천공항 1터미널은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마치 촬영이 끝난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끝도 없이 도착해서 사람들과 짐들을 뱉어 놓고는 사라지고 또 밀려드는 차들도 없고, 가끔씩 오고 가는 공항 보안 요원들만 있네. 어쩌다 눈에 띄는 여행객들은 어색해 보이고.

 

이거 참, 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다 어색해 보이다니.

게다가, 인천공항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울리는 걸 다 들어보고.

이런 때 해외로 나가는 내가 비정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네.'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 30분여의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상념에 잠겨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기에 3층 출국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이로비 현지의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정이 어떨지 짐작하기 어려웠고, 나이로비에 머물다 두바이로 입국해 일정을 이어가야 하기도 했거니와,

 

파트너인 John과 함께 이동하면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은 후, 가나에 있는 Y와 서울에 있는 한국 팀과 공유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무리 아프리카라 해도 숙소로 사용할 예정인 '레지던스식 아파트'에서 국제 전화나 유선 전화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출장에서는 로밍 에그를 임대하기로 하고 미리 예약을 해두었었는데,

 

그 로밍 에그의 공항 데스크 운영시간이 밤 10시까지였기 때문이었다. 

 

[일 사용료 ￦9,900 에 3일 이상 사용 시 하루 사용료 무료. 일 2G 까지 LTE 로 사용 가능했지만, 이용하지 못했다. KT 상담자가 '본인 명의' '카드'만을 강조했고, 해외에서 특히 아프리카에서 현금 사용할 일이 생기면 체크카드를 사용하려고 가져갔는데 인천 공항의 KT 데스크에서는 내부 시스템상 '신용카드' 만 사용 가능하다는 안내를 받고는 멘붕이 왔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계획은 나이로비도 아닌 인천공항에서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마치, 앞으로 나이로비에서 쏟아질 이야기 거리들의 Metaphor라도 되는 듯이.

 

[인천공항 KT 데스크 담담자가 안내해 준 다른 업체의 '와이파이 도시락'. 비록 KT 로밍 에그보다도 이용 요금이 비싸고 데이터 사용 용량도 일 500 MB에 불과했으며 무게도 무거워 휴대하기가 불편했었지만, 나이로비에서 꽤 쓸모가 있었다. 비행기 체크인 시간에 늦지 않도록 배려해 주고 밤 10시 자신의 퇴근 시간까지 미루어 가며 대여 과정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준 인천공항 KT 데스크 담당자 덕분이었다. 고마웠다.]

처음 가 보는 아프리카 출장에 대한 나의 계획은 인천공항의 로밍 에그 데스크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어서 다행이었다.

 

여행이었다면 예상하지 못했거나 예상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상황을 한편으로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에게 발생한 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계획했던 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남은 일은 보딩 패스를 받는 일과 출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일뿐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과 맞닥뜨렸다. 

 

그 시각 출국장에서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는 데스크였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지만 북적이는 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던 'Emirates' 항공 데스크에서 발권과 짐을 부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일제히 가져온 캐리어를 열어 젖히고는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부치는 짐에 넣으시면 안 됩니다! 세관 신고를 하시고 기내로 휴대하셔서 탑승하셔야 합니다!"

 

[John과 Y 그리고 서울팀이 속해 있는 WhatsApp 그룹 채팅방에 탑승 대기 사실을 알렸다]

'아차! 마스크를 생각 못 했네. 내가 사용할 KF-94, KF-80, KF-AD 에다가, John에게 선물로 줄 덴탈 마스크까지. 100 장도 넘게 가져왔는데. 출발 시간까지 50분 정도 밖엔 시간이 없는데, 세관 신고는 또 어디에서 해야 하는 거야?'

 

[다행스럽게도 'Emirates' 항공 발권 데스크 바로 옆 출국장 앞에 '휴대 마스크 세관 신고'를 위한 데스크가 마련되어 있었다. KF 마스크는 30장까지만 휴대가 가능했고, 내가 들고 간 덴탈 마스크 100장은 신고 대상이 아니었다.]

어수선했던 상황들을 뒤로하고 부산의 어머니 집에서 출발한 지 9시간 만에 경유지인 두바이행 비행기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나이로비에 도착하는 과정도, 그곳에서 벌어질 일들도 다만 오늘처럼, 그저 어수선한 정도에 그치기를 바라며 20시간 20분에 걸친 긴 야간 비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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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항공사에서 제공해 주는 '위생 키트']

 

[두바이행 비행기 안에서 잠을 청하려고 찾아 본 기내 오디오 서비스 목록에서 발견한 오랜만의 Kenny Rogers 의 'She Believes In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