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바이 공항

* 지난 2020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 새벽까지 코로나 시대에 혼자 가 본 아프리카 출장기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기억에 근거해 기록해 둔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간의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시간을 견뎌 보자는 의도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 기록해 본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차례, 아프리카 현지에서 2번, 귀국해서 1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으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출장기를 포스트 하고 있는 지금, 비어있는 부산의 어머니 집에서 자가 격리 중에 있다.

---

나이로비에 가기 위해 들러야 하는 경유지인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탑승 승객 수를 제한해서 그런지 승객 수 자체가 적어서인지, 빈 좌석이 눈에 많이 띄어 통로 쪽 좌석을 요청했던 나는, 평상시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이코노미 좌석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올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이렇게 누워서 올 수 있기를.

 

이제 이곳에서 5시간 정도를 기다렸다가 나이로비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도착해서 핸드폰의 전원을 다시 켜자마자 여러 번 연달아 울리는 메시지 도착 알람 소리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부에서 보내 온 그 메시지들은 동행 없이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으레 느낄 수 있는 근원적인 불안함에 더해,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을 더욱 증폭되게 만들었다. 

 

[외교부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가 유효한 지는 결국 확인해 볼 수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입.국.중.단' 이라니.'

 

'지금은 경유를 하지만 나는 나이로비로 갔다가 다시 두바이로 '입국'을 해야 하는데. 출발 이틀 전에 두바이 총영사관에 문의할 때만 해도 무비자 입국 가능하다고 했는데. Emirates 항공의 앱에서도 그랬고.'

 

'출국할 때 국내의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있긴 있었지만, 설마 내가 나와 있는 동안에 나이로비에서든 두바이에서든 가나에 발이 묶인 Y처럼 되는 상황이 생기진 않겠지? 그렇겠지? 별일 없을 거야.' 

 

환승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전용 통로로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머릿속을 맴도는, 증폭된 불안함에 기반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던 흡연에 대한 욕구가 갑자기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두바이 공항 환승 라운지 C 게이트 쪽으로 내려가는 방향,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맞은편에 있는 흡연 라운지. 팔짱을 끼고 있는 직원이 라운지 내의 적정 인원을 조정해가며 입장시킨다]

비행기 안에서 나이로비행 항공편의 환승 게이트 방향을 확인하긴 했지만, 환승 통로를 거치는 동안에도 안내 보드 화면에는 'C' 게이트 방향이라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자세한 정보가 표시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이 인천에서 함께 타고 왔던 한국인 승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흑인들인 환승객들만 나와 함께 이동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인 승객들은 두바이 거주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혼자군. 그런데 아직 게이트 번호가 지정이 안되었나?'

 

무슬림들에게 기도시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아랍어 안내방송이 흐르는 환승 통로의 안내 보드 앞에 멈춰 서서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그것도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와. 아직도 안 나오네. 이 넓은 공항에서 몇 번 게이트 인 줄 알아야, 벌리든 오그리든 할 거 아이가."       

 

01

[67년생이신 마라톤 감독님은 한국 나이로 두 살배기 딸과 서른한 살의 젊은 마라톤 선수 출신 케냐 아내를 만나러 코로나 이후 6개월 만에 케냐를 다니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아이의 사진이 인형처럼 귀여웠다.]

비록 최종 목적지는 서로 다르지만, 코로나 시대에 나 홀로 처음 가 보는 곳으로의 여행에서 그것도 해외에서 동행이 생겼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복잡했던 머릿속은 감독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부터 금세 사라졌고, 아프리카가 초행길인 나는 어느새 케냐에 대해 내가 인터넷으로 습득한 정보의 오류를 감독님을 통해 맞추어 보고 있었다.  

 

"케냐 날씨가 햇볕이 내리쬐는 곳은 더운데, 그늘만 가면 서늘해요. 새벽이나 저녁에는 쌀쌀할 겁니다. 케냐에는 난방 시설이 없거든요. 얇은 패딩이나 아니면 저처럼 최소한 바람막이라도 준비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패딩? 아무리 그래도 아프리칸데. 에이, 아니겠지.'

 

"케냐 공무원들 월급이 한국 돈으로 15만 원 정도 해요. 그런데 케냐 도착하시면 알겠지만, 도착 비자 받기 전에 비자 신청서 쓰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아주머니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이 신청서 대신 써 주고 한국 돈으로 2-3만 원씩 받아요. 그 분들한테 맡기시면 안 돼요."

 

"아, 도착 비자 비용은 50 달러인 거 아시죠? 코로나 때문에 현금보다는 카드나 M-PESA 를 선호합니다.

출입국 관리 공무원들도."

 

'M-PESA? 아, 인터넷에서 봤던 간편결제 같은 건가 보네. 케냐에도 간편결제가 있긴 있구나.'

 

"공항 도착하면 택시 기사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겁니다. 절대 타지 마세요. 바가지 써요. 마중 나올 분이 있으시다면 제일 좋고요."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제서야 나이로비행 비행기의 탑승 게이트의 번호가 정해졌고, 게이트 앞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반팔 차림은 나 뿐이었다. 말 그대로, 케냐 사람들에게 나는 '한국 촌놈'이 된 것이다.

 

01

[인천공항의 'Emirates' 항공 발권 데스크 직원이 '케냐'에 입국하려면 QR Code 가 있어야 한다며 친절하게 적어 준 URL 은 불행히도 아이폰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함께 들고 간 안드로이드 폰이 없었다면, 케냐에 입국할 수 없었거나, 한참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드디어 케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의외로 '투머치토커'였으며 'TMI' 였던 감독님이 기내에서도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연신 자신의 좌석에서 4열쯤 뒤에 떨어진 내 좌석까지 와서 말을 걸어준 덕분에 5시간의 비행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서로 마스크를 낀 채로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주로 듣는 편이었지만, 승무원들과 다른 승객들이 주는 눈치를 피할 순 없었다.

 

[항공권에 표시된 스케쥴은 오전 10시 15분 두바이 출발, 오후 2시 15분 나이로비 도착으로 총 5시간의 비행이었는데 - 두바이와 나이로비의 시차는 1시간 -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 장조 K.622 (쾨헬 번호 622) 2악장 Ada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