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이로비에서의 첫 끼니

* 지난 2020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 새벽까지 코로나 시대에 혼자 가 본 아프리카 출장기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기억에 근거해 기록해 둔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간의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시간을 견뎌 보자는 의도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 기록해 본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차례, 아프리카 현지에서 2번, 귀국해서 1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으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출장기를 포스트 하고 있는 지금, 비어있는 부산의 어머니 집에서 자가 격리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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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시간이 케냐 시간으로 오후 2시였는데, 그다지 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숙소로 예약해 두었다고 하는 아파트로 이동하는 차의 뒷 좌석에서 살펴보니 John과 운전기사는 여름에 입기에는 다소 두꺼워 보이는 점퍼도 걸치고 있었다.

 

'감독님 말씀이 이번에는 맞았구나. 불과 어제, 한국은 무지 더웠었는데, 여기는 한국의 늦여름, 초가을쯤 되는 날씨네.

오늘만 그런 건가?'

 

[John 이 예약해 두었다는 레지던스 서비스 아파트로 이동하는 차에서 바라본 나이로비 풍경. 예약했다며 내게 사진을 미리 보내왔던 숙소는 보안은 괜찮아 보였지만, 미팅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고, 일정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느낌이 들었으며, 코로나 때문에 직원들이 출.퇴근하지 않아 요리를 내가 해야 하거나 음식을 배달시켜야 할 경우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미팅 장소 인근 호텔로 숙소를 변경했다]

 

기존에 John이 예약해 두었던 아파트로 이동하던 도중에 급히 변경한 미팅 장소 인근의 호텔에 드디어 도착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낯익은 문자를 발견할 줄이야.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호텔인가 보네. 중국어가 다 적혀 있고.' 

 

[아프리카에서 만난 중국어. 영문 이름엔 '스위스'가 붙어 있다. 나이로비와 스위스 그리고 중국어. 언뜻 서로 연결되지 않아 궁금증만 더했다.]

 

1박에 220불짜리 레지던스 아파트에서 80불짜리 3성급 호텔로 바꾸긴 했지만, 어차피 오래 머물 일정이 아니었고, 긴 여정에 피곤했던 탓인지 이것저것 따져 보지 않고 그냥 투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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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엘리베이터에 설치되어 있던 오존 발생기. 저것으로 코로나 오염도 막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호텔 프론트 데스크에서 예상치 못하게 마주친 중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John 이 자신의 사업 파트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며, 다시 호텔로 데리러 올테니 쉬고 있다가 연락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밥 먹으려면 레스토랑 같은 데 들어가서 마스크 벗고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눠야 할 텐데. 코로나도 걱정되고, 그냥 내일 아침에 사무실에서 바로 보자고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도착 첫날인데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나이로비의 레스토랑은 어떨지 호기심이 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오는 내내 기내식만 먹은 터라 배가 고프기도 해서 저녁 먹자고 연락을 했다.

 

[코로나로 인해 밤 9시 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실시중인 나이로비의 다운타운으로 John, 그의 사업 파트너 Calvin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그러나 저녁 7시면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아 아프리카의 로컬 음식을 맛 볼 기회는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외출이 나이로비에 머무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저녁 외출이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책 중의 하나로 케냐에서 실시중인 통행금지 탓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코로나 시대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실내, 그것도 케냐에서 저녁을 먹는다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평상시 같았다면 그 시간이 기대와 설렘으로 달떴을 시간이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를 대접하려 했는데, curfew 때문에 레스토랑이 일찍 문을 닫았네. 괜찮으면 패스트푸드라도 사줄까? 피자 좋아해? 아니면 치킨은?"

 

영국식 발음에 케냐식 (정확하게 말하면 콩고식) 억양이 섞여 있는데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데 애를 먹었던 Calvin 이 내게 물었다.

 

'여기까지와서 설마 KFC나 피자헛을 가자는 건 아니겠지? 로컬 패스트푸드라면 한 번 먹어봐야겠다. 배도 고프고.'

 

[나이로비에는 주유소와 함께 붙어있는 상점들이 많았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인상적이었던건 상점 입구에 서 있는 경비 요원이었다. 체온을 재고, 손 세정제를 바르게 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입장을 시키지 않았다. 큰 체구와 초콜렛색 살색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표정과 말투가 무례하게 느껴질만큼 단호했다.]   

 

국내든 해외든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는 곳이면, 비록 그것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비겁한 여행자의 시선' 일지라도, 그 지역 사람들의 일상 중 어느 부분을 함께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데, 이곳이 그랬다. 

 

John 과 Calvin 이 내게 줄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동안 기다리며 둘러 본 상점에서 눈에 들어 온 사람들의 모습은,

 

퇴근 후에 집으로 가져가 가족들과 함께 먹을 음식을 주문하는 엄마,

한국이나 케냐나 열려있는 공간에서 친구들과 그 날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에 수다를 떨고 싶어하는 젊은 아가씨,

오늘 저녁에는 아이들에게 어떤 걸 사다 줄 까 궁리하며 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는 아빠였다.

 

30여 시간동안 여행을 해야만 하는 거리에 있는 한국에서 내가 인터넷으로 습득한 아프리카와 케냐, 나이로비에 대한 정보들은 그들이 보내고 있는 이 하루의 어느 공간에 함께 있게 되면서부터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지녔었던 너절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너무 평범해서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진리로 바뀌어 있었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천양희 시인, <뒤편> 중에서

markynkim.tistory.com/560

 

상점에서 만난 나이로비 사람들이 보냈을 코로나 시대의 오늘 하루는 어떠했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고단했던 하루였을까.

아니면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로 초행길을 떠났던 나처럼, 걱정과 긴장감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조금 편안해진 하루였을까. 

 

호텔로 돌아와 나이로비에서의 첫 끼니를 시작하며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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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몇 조각과 감자 칩 그리고 케냐에서 유명한 'Tusker' 맥주와 무가당이라고 적혀있는 'White Cap' 맥주로 나이로비에서의 첫 끼니를 채웠다. 500 ml 맥주 한 캔에 250 케냐 실링, 우리 돈으로 2800 원 가량 되었으니 그네들의 기준으로는 비싼 축에 속했을 것이다.]

 

'아침 8시 반부터 미팅하자며 John이 8시에 호텔로 온다고 했지? 계획했던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길'

'나이로비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