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지난 2020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 새벽까지 코로나 시대에 혼자 가 본 아프리카 출장기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기억에 근거해 기록해 둔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간의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시간을 견뎌 보자는 의도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 기록해 본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차례, 아프리카 현지에서 2번, 귀국해서 1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으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2020년 9월 17일 정오에 무사히 해외 입국자 의무 자가 격리에서 해제되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4시간을 넘는 시간을 보내 조금 피곤함을 느꼈던 탓이었는지, 이제는 나이로비에서 보내는 시간이 편안해졌던 탓인지, 아니면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새벽 시간에 눈을 떴다.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는 춥다는 느낌마저 드는 나이로비의 새벽 날씨에 잠을 깨러,

호텔방에서 나와 야외 라운지 한 쪽에 앉아 있는데, 서울에 있는 친구가 'Zoom' 을 하자며 말을 걸어왔다. 

 

[친구들과의 새벽 6시 Zoom 화상 통화.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경험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 종일 실내에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친구와 외부 거래처와의 소통이 필수적인 또 다른 친구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만 일이 되는 직업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로나 시대를 건너가고 있는 다른 생활인들이 대개 그렇듯, 그들 역시 먹고사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되기에 무던히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Zoom 이었다.

 

[나이로비의 새벽을 보여달라는 친구들의 말에 호텔 스카이라운지로 올라가 '생중계' 했던 장면]

나이로비에 출장을 와 있는 사이, 한국에서는 강화된 2.5단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었고, 이참에 몇 년간 쉬고 싶어도 일을 쉴 수가 없었던 친구 중 한 명이,

태풍 예보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식히러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삼척에 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보여 준 그 시각 삼척의 모습은 꽤 근사해 보였는데, 그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며 일을 해왔던 그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서울에 있는 친구와 나는 동시에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삼척에 가 있는 친구에게 녹음해서 들려줄 요량으로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도중에 사연을 보냈다. 비록 신청곡은 아니었지만, 방송 도중에 사연을 보냈는데도 소개해 주어 고마웠다. 그러나 이 사연은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거짓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병원으로 함께 '코로나 테스트' 결과서를 가지러 가자며,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던 John 에게서 한참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아. 정말. 오늘은 또 무슨 핑계를 대려고. 진짜 시간 개념 없네. 떠나는 날까지 이러네.'

 

[나를 데리러 호텔로 오는 길이라던 John 이 보내온 메시지는 그가 나와 함께 받은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 지나 John 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메시지에 첨부되어 있던 코로나 검사 결과지에는 'Positive' 라는 단어가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John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햐. 이거 인천공항에서 어수선했던 건 아무것도 아니었구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며칠 전 머리가 아프다고 했던 것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어제 저녁 식사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체온도 정상이고, 목도 아프지 않고, 아무 증상이 없는데 왜 자기가 '양성'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는 John 에게,

우선 집으로 돌아가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라며 다독거렸다.   

 

그리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신속히 상황을 전파한 후 대책을 세워야 했는데, John 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Calvin 도 수출 에이전트인 Paul 도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어긋나고, 우선순위도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채, 2020년 8월의 마지막 날 오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에게 항상 'Bro' 를 붙이며 친근하게 대해 주었던 수출 에이전트 Paul]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어야 할 나이로비를 떠나는 일정은 갑자기 멈춰서 버렸고, Y를 포함한 서울팀은 물론 Calvin 과 Paul 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서울 팀과의 전화 회의, 다시 Calvin, Paul 과의 전화 회의, 중간중간 John 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화 등 계속 이어진 전화 끝에 Calvin 과 나는 Paul 의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먹지 못한 채.

 

[나와 John 을 데려다주던 Paul 회사의 운전기사도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이동하는 도중에 덥다는 말을 계속 혼잣말로 되뇌길래 도대체 기온이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오후에 만난 Calvin 은 내가 선물로 가져온 덴탈 마스크를 2장이나 겹쳐서 얼굴에 쓴 상태였고, 나이로비에서 미팅을 몇 차례 진행하는 동안 마스크를 한 번도 하고 있지 않았던 Paul 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며, infoDesk에 앉아 있던 검은색 안경테의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John 은 양성이라는데, 너는 괜찮아?"

 

벌어진 일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골몰해 있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Calvin 의 말에 갑자기 걱정과 불안이 다시 밀려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이로비에 도착해서 부터, 코로나 검사를 받던 지난 토요일까지 John 과 나는 4일 동안 매일 만났고, 한 번 식사를 함께 했으며, 이동하는 차 안에서 그의 케냐 특유의 악센트에 영국식 발음이 뒤섞인 영어를 알아듣는데 애를 먹어 바짝 붙어 대화를 나누기 일쑤였었다.   

 

"응. 괜찮아. 난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어. John 하고 너희들 만나는 동안 마스크 벗었던 적 없었잖아."

 

"What a relief!"

 

다음 날 아침 일찍, Calvin 과 Paul 도 병원으로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모든 일정을 다시 수정해야 했지만, 그것은 또한 Calvin 과 Paul 의 검사 결과와 맞물려 있어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두바이에서 나와 John 을 기다리고 있는 두바이 팀의 일정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스펙타클하고 엉망인 출장이다.'    

 

[호텔 소유주의 친구라던 중국인 노 신사 한 분이 자기 회사 제품이라며 야외 라운지에 앉아 있던 내게 선물로 주고 간 KN95 마스크]

호텔로 돌아와 야외 라운지에서 다시 서울팀과 전화 회의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노(老) 신사분께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호텔 소유주와 중국어로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는데, 낮술을 한 잔 걸쳤는지 얼굴이 불콰했다.

 

"한국? 한국은 세 가지가 세계 최고지. 뭐가 최고인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 뭐가 최고인가요?"

 

"한국은 첫 번째, 선교 활동이 세계 최고야.

내가 동남아, 남미 그리고 여기 아프리카 다 다녀봤는데, 선교 활동하고 있는 동양 사람들 국적을 물어보면 전부 다 한국이야."

 

"두 번째는 삼성이지. 모바일 폰."

"세 번째는 축구야. 피야오 쯔 씽(박지성), 쑨 씽 민(손흥민).

중국이라면 그런 스타가 나올 수 없지. 한국이라서 다행이야."

 

'두 번째, 세 번째는 이해하겠는데, 첫 번째는 의외네'

'그나저나, 다행이다란 말로 하루를 시작했는데, 다행이란 말 오늘 참 자주 듣는군.'

 

중국인 노신사와 몇 마디 나누다가, 내일은 정말 다행한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John 의 확진 소식을 들은 오늘까지,

내게 벌어진 모든 일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모두 다행스러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만난 행운들이 모여 다행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다행 多幸은 뜻밖으로 일이 잘 풀리고 그래서 운이 좋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서 다행을 결정하는 것은 늘, 일이 잘 풀리도록 도와주는 사람, 다른 기회. 즉, 요행 僥倖 이었지만,
내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도 다행의 또 다른 결정자일 겁니다." 

markynkim.tistory.com/1118

 

 

레너드 번스타인 곡 - 뮤지컬 <On the Town> 중에서 "Lucky To Be Me"

 

#바리톤_토마스 햄프슨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