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 「가을, 원수같은」
"단풍 든 가을 나무에서는 다가올 겨울보다 지나간 여름과 봄이 겹쳐 보입니다. 가지만 남은 채 겨울을 맞게 될 나무보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록이었던 여름, 신록이었던 봄이 먼저 기억나죠. 다가올 날보다 지난날이 먼저 보이는 가을은 그래서 추억의 계절. 지난 세월, 지난 사람, 지난 일들을 곱씹으며 흘러간 세월 속에 마음을 푹 담글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추억의 계절입니다. 돈 걱정, 일 걱정, 번뇌와 상념. 이런 거 없이 편안하게 과거를 추억해야 하는 계절이 가을인데. 그런 걸 좀 해보려고 하면 사치스럽다고 현실이 죽비를 때리지요. 그래서 가을만 되면 추억하게 되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같은. 원수같은 가을을 1978년도 시집으로..
받아쓰기/노날
2023. 8. 13. 1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