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베르트는 냅킨에 악보를 그린 적도 있다는데. 어쩌면 21세기에는 영수증에 악보를 그린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영수증에 짧은 글을 쓴 작가는 없었을까? 그런 것이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전자 영수증이 보편화된 시대라서 아마도 종이로 만든 영수증은 점점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수증은 사라져도.인생은, 시간은, 역사는. 결코 영수증을 잊는 법이 없지요.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이 발행한 영수증은,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당장은 세상이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진심의 영수증 또한 이미 우리 삶 어딘가에 도착해 있을지도 모르지요. 삶은 깐깐한 검사관처럼 정확한 영수증을 발행한다는데. 이 5월에 우리에겐 어떤 영수증이 발행됐을지, 어떤 청구서가..

"생각해 보면, 우리의 모든 날은 우리를 빛나게 해주려 애썼던 사람들이 만든 결실입니다. 기쁜 날이든 슬픈 날이든 우리 곁엔 그런 사랑의 마음이 있었고, 그런 정성이 있었고, 그런 손길이 있었지요. 때론 그 마음이 서툴고 거칠어서 상처로 날아온 적도 있겠지만, 본래의 마음을 기억한다면 다 이해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5월은 그런 달이 되면 좋겠습니다.가정이나 가족이라는 한 묶음의 운명에 그림자처럼 자신을 내어준 수고를 기억하는 달. 가족이 아니면서도 가족 이상으로 헌신하고 아껴준 사람을 기억하는 달. 좀처럼 빛나지 않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척하며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는 달. 아무리 힘들어도 주저앉지 않고,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해 준 분들을 기억하는 달.그런분들을 기도..

"몸의 기도문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몸의 기도문이 있을 겁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혹은 밥을 먹을 때,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좋아하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할 때, 일기를 쓸 때 혹은 외롭거나 쓸쓸할 때.잠자리에 들 때. 꼭 하게 되는 행동이 있을 겁니다. 그 행동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출발점을 찾아가 보면.즐거운 경험에서 시작된 루틴도 있고, 상처를 견디기 위해 시작된 루틴도 있겠지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들의 루틴에는 동네 서점 들렀다 오기.나를 위해 작은 선물하기. 수고했다고 내 마음 쓰다듬어주기. 이런 것들이 들어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by 세.음. ♬ Eric Satie 에릭 사티 곡 -"Je te v..

"시를 읽다 보니 법정 스님이 뒷짐을 지고 걸으시던 모습을 담은 책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브람스도 늘 뒷짐진 자세로 산책을 했었네요. 브람스 평전의 표지도 아마 뒷짐지고 걷는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뒷짐을 지는 건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사색에 잠긴 사람의 자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손을 등 뒤로 돌려서 포갠 자세.뒷짐이라는 말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무척 시적이고 철학적입니다. 뒷짐을 지는 일이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일이라는 이정록 시인의 시를 읽고 나니 더 그렇습니다.그 모습이 허공 한 채, 우주 한 채 업고 다니는 모습이구나, 새삼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어른들이 뒷짐지는 자세로 걷는 때가 많은 건, 열정적이었던 인생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과도..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기회가 어딘가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흐린 별처럼 빛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너무 일찍 지치지 않는 것. 나를 믿고 기다려 보는 것. 한 걸음 더 걸어가 보는 것.커다란 것만 바라보느라 작고 소중한 기회를 그냥 지나쳐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선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흐린 별처럼 빛나고 있어도 별은 별이니까요. 유독 힘겨운 월요일이 있다면 월요 예선 이야기를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꼭 완벽하게 좋은 기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기회를 좋은 기회로 만드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by 세.음. https://www.golfcompendium.com/2019/04/monday-qualifiers-who-won-on-..

"젊고, 화사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인생을 새롭게 배우는 기분이라고 꽃집 주인은 말씀하시더군요. 자신에게 꽃을 선물하는 사람들도 멋지고, 어른은 자신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더더욱 멋집니다. 작은 꽃집에서 이렇게 근사한 인생의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도 정말 기쁜 소식입니다. 2월은 노란 프리지아와 튤립이 예쁠 때지요. 가끔은 우리도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꽃다발을 안겨줄 때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봅니다."-by 세.음. ♬ Wolfgang Amadeus Mozart 모차르트 곡 - "Horn Concerto 호른 협주곡 No. 4 in E-Flat Major, K. 495: III. Rondo. Allegro vivace" #horn_Barry Tuckwell ..

"그래도 바늘 끝은 계속 떨리고 있지요. 끝없이 방향을 찾기 위해 깨어 있는 노력이 바로 나침반 바늘의 떨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떨림을 감당하는 나침반. 그러니 우리가 가진 나침반의 바늘이 떨리지 않는다면 고장난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의 길을 찾아가느라 애쓰는 우리들 또한 자주 흔들리고 방황하고 힘겨운 것이 당연하다고 나침반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남쪽으로 가는 귀성 행렬에 있고, 누군가는 동쪽으로 가는 여행길에 있고, 또 누군가는 늘 있던 그 자리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을 누리고 있을 시간.내 마음의 바늘 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는지.여전히 섬세하게 나의 방향을 찾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기에 좋은 시간들이 아닐까 생각해 ..

"가끔 우리의 발자국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우리가 스스로 치르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눈길을 또박또박 잘 걸어왔는지.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보살피며 왔는지.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걷고 있는지. 뒤돌아보는 일은 대개 한 해의 끝자락에 어울리는 일이지만. 왠지 올해는 첫 페이지부터 자주 뒤돌아보며 걸어가야겠다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by 세.음. ♬ Wolfgang Amadeus Mozart 모차르트 곡 - "Piano Sonata No.16, K.545" #pf_손열음 https://youtu.be/1FCWXPEIONo?si=HFsfKawiad6kptXN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얼마나 대단한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도록 우리만 애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을 잘 보냈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는 모두 함께 받는 상과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니 올 한 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놀라운 시간이었다고 수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누군가 우리를 애틋하게 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고, 또 우리도 누군가를 애틋하게 그리워했고 눈부시게 바라보기도 했을 테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날이었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해놓은 것도 없이 한 해가 가네 그런 생각 대신.현실로부터 등 돌리지 않은 나. 잘 견딘 나. 도망치지 않은 내가 이렇게 멋지게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다고 흐뭇해 해도 좋지 ..

"언제든 멈춰도 괜찮습니다. 꼭 42.195 킬로미터를 다 달리지 않아도 괜찮고, 가끔은 책임감 있는 아들, 착한 딸이 되기를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끝없이 달리고 또 달리던 '포레스트 검프'가 갑자기 멈춰선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춰도 괜찮고.상대방보다 나를 더 해치던 미움을 멈추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이미 떠난 버스를 잡으려고 악착같이 뛰던 노력을 그치면, 이제 막 정류장으로 들어서는 새로운 버스가 보이기도 할 겁니다. 비가 그치고 나면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말이죠.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열아홉 살 소년이었던 황동규 시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문장을 11월의 선물처럼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묻지만, 사랑은 변하고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