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작가 「밤은 내가 가질 게」 중

 

"2년 전 라디오 문학관에서 <2만원만 빌려줘> 란 작품으로 알게 된 안보윤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작품이 방송되던 시기에 유난히 아동 학대에 관한 끔찍한 뉴스가 많았을뿐더러,  
작가가 건져 올린 훌륭한 문장들이 많아 메모해 둔 지 거의 4개월여만이다.

화자는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남자아이를 돌보는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세상은 공평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녀에게 '세상의 공평함'이란 자신의 보조 선생에게 충고했던 말처럼.
늘 이런식이었다.
  
'세상은 공평해서, 한 쪽이 선을 가지면 다른 쪽은 악을 가져.
네가 만만하고 짓밟기 좋은 선인 善人이 되면, 저쪽은 자기가 제멋대로 굴어도 되는 줄 아니까.
너를 애기 쌤이라 부르는 이유와 언제까지 애기로 살 건지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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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반아, 넌 니가 선생인 것 같니?"
"네에?"
"왜? 모욕 당한 것 같애? 유치원 선생은 교육직이지만, 어린이집 선생은 보육 서비스직이야."
"니가 학부모에게 아이 발달 사항을 설명하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해주면 가끔 선생으로 인정 받을 때도 있겠지. 근데, 그게. 널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냐. 서비스만 요구하면 서비스만 해줘야지.

하는만큼 받는거야. 세상은 공평하거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심한 삶을 살고 있던 언니를.
동성인 동거인과 함께 지내는 보금자리에 떠안게 되고.

더부살이 처지인 언니가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눈여겨 본.
안락사 당할 예정인 늙고, 까만데다가, 피부병까지 있는 강아지를 입양하겠다는 
언니를 두둔하는 것도 모자라

그런 언니를 돕겠다는 동거인과 심하게 다투게 된다. 

"제 구실 못하는 것들 수발들기가 얼마나 더럽고 지긋지긋한 일인지 알기나 해?!
책임질 능력도, 자격도 없으면 애초에 손을 뻗질 말았어야지!
연민이니, 죄책감이니 그따위 헤픈 감정에 빠져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버려진 개 몇 마리 돌봐줬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 것 같대?!

지 앞가림도 못하면서 무슨 주제넘는 소리야!!"

어느 날.
화자는 아동 학대의 의심만 하고 있던 자신의 '나무반' 남자아이의 지속적인 학대 흔적을 직접 목격한 후.
경찰서에 신고하게 되는데,

그렇게 가게 된 경찰서에서 처음으로 '선생님' 이란 소리를 듣게 되고,
경찰서로 달려온 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래도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

라는 말도 언니에게서 듣게 되고.

이후 언니는 유기견 센터에서 만난 개의 목에 걸려 있던 <밤톨> 이란 이름이 적힌 은색 펜던트를 떼어내며 말한다.

"밤은 내가 가질게.
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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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감상하고 난 후에 내가 깨달은 건.

가족들의 지속적인 학대를 받아 온 남자아이와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온 언니와
귀여워는 해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유기견의 문제가

서로 닮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공평함은 선이 있으면 악이 있다는 식의 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함을 따라야 한다는.

공평함의 방향성이었다.

시종일관 '드라이'한 성우의 나레이션과 음악감독의 BGM 선택이
그 느낌을 오랫동안 머금게 만든.

단편 소설이지만 영상으로도 보고 싶을 만큼 빼어난 작품이었다.

-by Markim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795/episodes/24038923

(05/09/일) 안보윤 - 밤은 내가 가질게

 
♬ 김태근 곡 - "Seaside In Autumn" from 드라마 <병원선>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