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가 얼마나 대단한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가도록 우리만 애쓴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을 잘 보냈기 때문에.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하루는 모두 함께 받는 상과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니 올 한 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고 놀라운 시간이었다고 수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누군가 우리를 애틋하게 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고, 또 우리도 누군가를 애틋하게 그리워했고 눈부시게 바라보기도 했을 테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날이었을 겁니다. 이제부터는 해놓은 것도 없이 한 해가 가네 그런 생각 대신.현실로부터 등 돌리지 않은 나. 잘 견딘 나. 도망치지 않은 내가 이렇게 멋지게 한 해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다고 흐뭇해 해도 좋지 ..

어떤 시는 제목과 합쳐져야 비로소 완벽해지죠. 이 시 도 그렇습니다. 잎을 모두 떨구고 겨울을 나는 나무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이 시를 읽으면서 그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공감하게 됩니다. 당분간의 폐업 덕분에 나무는 겨울을 견딜 수 있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어디론가 다녀오거나, 자기 안에 은둔하는 시간이 있어서 우리도 혹독한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 겁니다 앙상한 가지만 남았어도 겨울나무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말. 그 말도 기억해 보는 겨울 저녁입니다. -by 세음 https://youtu.be/0GOZj8_lwLA
"만약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이 시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상처받는 일과 나쁜 소문, 꿈이 깨어지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러나 한참 걸어와 뒤돌아보는 시선 속에는 그때의 나에게 연민과 그리움 그리고 응원이 담겨 있습니다. 가을은 가정법이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만약 그때 그랬더라면, 혹은 할 수만 있다면 이런 말들을 자주 데려와서 소심했던 나를 용기 있게, 슬펐던 나를 담담하게, 쓸쓸했던 나를 환하게 밝혀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by 세음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오월쯤 싹을 틔웁니다. 심지어 유월 초에도 삭을 틔우는 대추나무가 있어서, 옛사람들은 느리다고, 양반 나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늑장을 부린 만큼 속도를 내죠. 잎이 돋고 삼 개월이 지나면 제법 실한 푸른 대추를 달고, 푸른 대추는 구월 말이나 시월 초까지 붉은 갈색으로 익어갑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에 세상의 어떤 책보다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온갖 시련을 이기는 인고가 따른다고 했습니다. 태풍에 떨어진 대추들에게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어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오늘은 태풍만 불지 않았으면 풋대추로 끝나지 않았을 대추들을..
"시를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꽃 피는 걸 좋아하는 건 아름답기 때문일까 아니면 무언가 또 다른 감정의 동요가 있기 때문일까. 사람인데, 성벽처럼 단단한 마음의 균열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어쩌면 긴장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허술해지고 싶을 때, 꽃처럼 아름다운 핑계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긴장이 풀어지려고 하는 금요일 저녁. 검고 무거운 구두를 어디 그늘진 곳에라도 벗어두자는 구절에도 마음이 갑니다. 좀 느슨해지고 허술해지고 곁을 내어주며 살아야겠다. 빡빡한 마음에 바람길도 좀 내어줘야겠다 싶습니다." -by 세음 세음 2019.04.05.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