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 지난 2020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 새벽까지 코로나 시대에 혼자 가 본 아프리카 출장기를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기억에 근거해 기록해 둔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14일간의 의무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시간을 견뎌 보자는 의도도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아프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없어 기록해 본다는 의도도 있다.

 

물론,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수차례, 아프리카 현지에서 2번, 귀국해서 1번 코로나 테스트를 받았으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고, 출장기를 포스트 하고 있는 지금, 비어있는 부산의 어머니 집에서 자가 격리 중에 있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나이로비를 떠나 두바이로 함께 이동해야 하는 John 과 나는, 나이로비 시내의 한 병원에서 함께 코로나 테스트를 받기로 했다. 비행기에 탑승하려면 탑승 시간 96 시간 이내에 PCR 방식으로 테스트한 '음성 판정 확인서' 지참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John 은 테스트 결과가 몇 시간 이내로 나온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지 모르겠네. 한국에서는 하루가 걸렸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이 잘 풀리면 오늘이 나이로비에서 마지막 날이군.'

 

샤워를 하고 나와 어젯밤에 녹음만 해 두고는 미처 듣지 못했던, 애청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들었다.

 

'여행은 안 돌아오는 것이다' - 이진명 시인 <여행> 중

 - "떠날 때 돌아오는 티켓을 끊었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 역시도 또 하나의 떠나는 여행이었구나.
    그 길의 일들 역시 모두 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더 소중하고 눈부신 것이구나 싶습니다."

markynkim.tistory.com/1341 

 

'나이로비를 떠나는 날 이런 시를 듣게 되다니. 타이밍이 참 절묘하네.' 

'그래. 안 돌아오는 것이구나. 여행은. 첫 여자처럼.'

'첫 아프리카 출장이었는데. 그것도 코로나 시대에.'

 

'이런 출장 다신 안 돌아오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떠나기 전에 내가 한국에서 봤던 아프리카의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 야외 라운지로 나가는 길에 만난 풍경. 오전 10시에 결혼식이 있어 새벽부터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John 이 연락을 해 왔다. 두통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아 잠을 설쳤다면서.

 

'안 그래도 마음이 바빠 죽겠는데. 이거 참. 어쩔 수 있나. 아팠다는데.'

 

012
[신랑 Muthoui, 신부 Waweru 의 앞날에 행복만 있기를 그리고 예쁘게 차려 입은 신부 친구 Loisy. 임신 중인데 이 사진이 마음에 안든다며 다시 찍자고 했다.]   

 

"어느 병원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가자, John. 오늘 밤 비행기 타려면 시간이 많지 않아!"

 

주 케냐 한국 대사관에 문의해 얻었던 나이로비 시내 병원에 대한 정보를, John 이 각 병원에 전화를 돌려 가장 빨리 결과가 나오는 곳으로 알아봐 두었었다. 

 

[나이로비 Ngong Road 에 있는 Lancet Lab.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John 이고, 이후로 나는 나이로비를 떠날 때까지 John을 직접 만날 수 없었다]

 

토요일 오전이었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검체 채취를 위한 장소뿐 아니라 테스트 접수와 비용 지불이 이루어지는 건물 내의 대기실에도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들 테스트 다 받으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 걸. 오늘 밤 비행기 탈 수 있을 지 걱정이다'

 

012
[검체 채취를 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나온 John 이 설명해 준 나이로비에서의 코로나 테스트 과정은 이랬다. 1. Lab과 같은 건물에 있는 명함에 적혀 있는 곳으로 가서 먼저 의사의 문진을 받는다 --> 2. 문진 결과가 적힌 테스트 신청서를 받는다 --> 3. 문진 비용을 지불한다 --> 4, 다시 이곳으로 와서 테스트 비용을 지불한다 --> 5. 테스트 신청서에 검체 구분을 위한 바코드를 부착한다 --> 6. 신청서를 들고 검체 채취 장소 바깥에서 대기한다 --> 7. 검체 채취를 받는다 --> 8. 이메일로 테스트 결과를 통보받는다 --> 9. 다시 병원을 방문하여 프린트 아웃된 버전의 확인서를 발급 받는다]

 

John 이 문의한 바 대로 신청서를 들고 검체 채취 장소 바깥에 마련된 장소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함께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케냐 여성들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프리카 여자들은 머리 한 번 하려면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고 마라톤 감독님이 말했었지. 생머리 같은 머리카락은 죄다 가발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그렇겠네.'

 

[얼굴만 내놓은 '차도르'를 입은 무슬림 여성과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땋은 머리를 한 젊은 케냐 여성]&nbsp;

 

한국과는 다르게 콧구멍의 검체만 채취하는, 불과 1분도 안 걸리는 테스트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고 있는데 조수석에 앉은 John 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Paul 에게서 온 전화야. 통화해 볼 게."

 

뒷 좌석에 앉아 차 창 밖 풍경을 구경하고 있던 나에게 John 이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좋은 소식이어야 할 텐데.'

영어 대신 스와힐리어로 주고 받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John 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생각했다.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