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 지난 바다, 가을 백사장에 남겨진 발자국을 바라보는 건 여름의 발자국을 바라보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여름 바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아니라, 가을의 쓸쓸한 모래 소리만 사각사각 묻어 있는 발자국. 마치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사장에 남겨진 발자국을 파도가 지우는 것처럼, 깊어가는 가을이 어지러운 발자취를 거두자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발자국 하나 거둘 때마다 힘들었던 걸음을 위로해 주고, 어지러운 발자취를 남기면서도 여기까지 온 스스로에게 애썼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해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by 세.음. ♬ 윤한 - "It Was You" https://youtu.be/eLIS-fO1wyg

"떨림이라는 걸 아득하게 잊고 사는 날들. 그래서 아무것도 흔들지 못하는 날들. 함부로 흔들지 않고,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빛나는 시절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애써 위안해 보는 날들. 시를 읽다가 문득 마음이 진도 3의 지진을 만난 듯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떨림 속의 집 한 채'는 영영 어려운 일일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안에 이룰 수 있는 일일 것 같기도 합니다. 시 같고 사원 같고 꽃 같고 당신 같기도 한 그 기적이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을까. 마음에 손을 얹어봅니다." -by 세음 ♬ Dario Marianelli 다리오 마리아넬리 곡 - "Dawn 새벽" from 영화 OST 중 #pf_Jean-Yves Tibaudet 피아노_장 이브 티보데
"바다에 떠가는 배가 아니라 마당에 매어 둔 녹음 가득한 배. 우리의 삶을 한 문장으로 집약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닿지 못하고 마당에 정박한 배. 그렇지만 초조하거나 불안한 정박이 아니라 언젠가 이 줄을 풀어유유히 떠날 날을 기다리는 여유도 느껴집니다. 자의든 타의든 마당에 매어 둔 배처럼 정박해 있다 하더라도 마음으로나마 때때로 그 줄을 풀어주어서 자유롭게 떠돌다 돌아오게 해주고 싶다 생각해 봅니다." -by 세음 2019.07.08.월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맺고 그 열매가 영글어갈 때 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설렘과 한숨을 겪었을까. 찬란한 빛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영글게 할 때 까지, 뜨겁던 시간 만큼이나 참담한 시간들도 겪었을텐데. 어떤 시간들을 겪어야 녹말물이 가라앉듯,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그렇게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음에 몇번쯤 도달해 보고, 그 평온함에 이르렀을 때, 참았던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이 지고, 뜨거웠던 마음이 식고, 찬란하던 빛이 사위어 가고, 그 과정에서 건져올린 '간신히’ 라는 단어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by 세음 2019.05.14. 화 저녁이 꾸는 꿈
"이 시를 읽는 데 엉뚱하게도 원효대사의 가을마당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원효대사가 아들 설총에게 늦가을 마당을 쓸어놓으라고 하니, 설총은 열심히 마당을 비질해서 낙엽 하나 없는 정갈한 마당으로 쓸어 놓았습니다. 원효대사는 ‘잘못 쓸었구나 다시 쓸어라’ 하고 말했고, 설총은 더 열심히 마당을 쓸었죠. 그러자 원효대사는 낙엽 몇장 주워서 마당에 두고, 가을마당은 이렇게 쓸어야 제격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 가을마당을 쓰는 법이 있는 것처럼, 여름의 발자취를 거두는 법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지러운 발자취도 거두고, 거기에 가는 시선도 거두고, 물가에 서 있던 마음도 거두자는 시인의 권유처럼, 우리가 떠나온 여름마당을 비 질 할 방법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b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