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에게 구전되는 글 입니다. 아프리카의 원시부족도 킬리만자로를 오를때 자기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주곤 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켈트족이나 아프리카 원시 부족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곳에서 이 글과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 지 모르죠. 세상은 우리를 잠시라도 멈추면 죽는다는 다랑어로 여기는 건 아닐까, 우리 스스로도 우리를 그렇게 여긴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때마나 켈트족의 글을 마음을 닦는 거울처럼 여기며 읽게 됩니다. 어느 도로나 차가 밀려 천천히 갈 수 밖에 없는 금요일 퇴근길. 이 퇴근길을 내가 나를 기다려주기 위해 천천히 가는 길이라고 여기면 어떨까. 길위를 가득 메운 브레이크 등을 보며 생각해 봅니다." -by 세음 세음 2019.03.22. 금 저녁꿈 받아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 중에 나오는 글이었습니다. 매 순간 현재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온 것 같기도 하고, 한 번도 현재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로지 혼자서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일, 마음의 소리 현재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건 어떤 것일까요? 친구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서, 부모님 안색이 걱정되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자주 눈치를 보던 것처럼, 현재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삶의 눈치를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산타이고 가는 길의 순례자들처럼 오래 무념무상으로 걷고 나면, 현재의 소리가 절로 들리고 올바른 결정도 쉽게 하게 될까 인생에 던져진 질문 앞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난해할 것도 없는 문장 앞에서, 절로 서성이게..
기도문처럼 매일 이런 말을 암송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면 그 마음이 어떻게 맑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마음이 어떻게 아름다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나바호 족은 모든 자연현상과 시간의 흐름을 집에 비유한다지요. 새벽으로 만든 집, 저녁 빛으로 만든 집, 먹구름으로 만든 집, 아침 안개로 만든 집, 피곤한 몸으로 귀갓길에 올라 쓰러지듯 들어서던 집이 나를 받아주는 안식처 만이 아니라 나를 재생시키는 요람이며 탁해진 눈빛을 맑은 눈빛으로 정화 시켜주는 곳이라는 걸, 세상 모든 것을 집으로 삼는 나바호 족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by 세음 세음 2019.03.18.월 저녁꿈 받아씀.
세음 2019.03.16.토. 받아씀. ♬ Robert Schumann 슈만 곡 - "Piano Quartet in E Flat Major, Op. 47 피아노 4중주 Eb장조 Op.47 - 3. Andante cantabile" #vn_Janine Jansen 바이올린_재닌 얀센 #vn_Julian Rachlin 바이올린_줄리안 라츨린 #vc_Mischa Maisky 첼로_미샤 마이스키 #pf_Martha Argerich 피아노_마르타 아르헤리치 https://youtu.be/Rd8PDCOB2uI
"이 베이비시터의 정체는 스포일러가 될 거라서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툴리를 울게 했던 그 위로만큼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산에서 길을 잃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던 어느 산악인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둘로 나누어 대화를 나누며 살아 남았다지요. 그건 지금의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나의 고통을 나누어 줄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살아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전체를 치유하지 않고 부분만 고칠수는 없다지만, 사실 어떤 경우에는 부분이라도 치유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절박한 부분을 먼저 수선해야 전체를 쓰러지지 않게 할 수도 있지요. 그렇게 절박할 때 날 위해 달려와 줄 사람은 있을까. 친구란 나의 짐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데. 기꺼이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갈 사람이 있을까..